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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면서 빠르게 내달린다
먼저 못 멈추는‘죄수의 딜레마’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진다.그런데 위험을 경고하는 이들이 정작 투자와 사업 확장에는 속도를 낸다.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명예교수는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앤트로픽 등의 행위가 너무나 위선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실을 고려하면 속도를 늦출 수 있느냐도 미지수다.미국과 중국에는 기술 패권이 걸려 있다.빅테크는 시장 주도권이 달렸다.함께 속도를 줄이면 위험을 낮출 수 있지만 혼자 멈추면 경쟁자에게 밀린다.누구도 상대가 멈출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죄수의 딜레마’다.

 9월 14일 로스앤젤레스‘올인 서밋’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움직임에 대해 “AI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쪽의 의도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SNS 캡처)
9월 14일 로스앤젤레스‘올인 서밋’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움직임에 대해 “AI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쪽의 의도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SNS 캡처)
美도 中도 달갑지 않다

반쪽짜리 AI 속도 조절론

논쟁의 출발점은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9월 12일 공개한 에세이‘We Must Pace the Frontier’다.AI 개발 최전선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제안이다.다만 전제가 붙었다.미국이 중국에 가진 기술 우위는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다.안전을 위해 개발 속도를 늦추더라도 중국에 추월당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속도 조절론’이 처음부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은 곧바로 반발했다.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공포 조장과 대립,악성 경쟁은 세계 AI 거버넌스를 흔들 뿐”이라고 지적했다.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아모데이의 제안을 중국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한‘조용한 AI 냉전’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아모데이의 제안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9월 14일 로스앤젤레스‘올인 서밋’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움직임을 두고 “AI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쪽의 의도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AI가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주장에는 “사기극(hoax)”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전문가들은 미·중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한 속도 조절론이 실제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켄턴 티보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현재 정치 환경을 감안하면 AI 안전 분야에서 미·중 간 큰 돌파구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그레이엄 브루키 애틀랜틱카운슬 부회장도 “현재 양국 지도부 모두 그럴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속도 늦추면 수익성 오른다?

감속론 뒤 숨은 선두의 셈법

기업 간 경쟁도 속도 조절이 어려운 배경이다.게리 탄 올스프링글로벌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생태계가 현재의 서열을 받아들이고 속도를 늦출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선두 기업이 “이쯤에서 천천히 가자”고 해도 후발 주자가 현재 격차를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속도 조절론의 진의를 의심하는 시선도 짙다.소셜캐피털 창업자인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아모데이의 제안을‘사다리 걷어차기’로 봤다.안전을 이유로 모델 공개와 개발 규칙을 까다롭게 만들면 자본과 인재,이더 리움 네임서비스 디시컴퓨팅 자원을 이미 확보한 선두 기업은 버틸 수 있지만 후발 주자는 추격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

김중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선두권 업체의 서로 짠 듯한 입장 표명이 이어져‘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의심이 커진 상태”라며 “앞서 있는 곳이 독과점을 위한 판을 짜는 건 기업의 본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도 “선두 업체의‘이익’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GPU를 공장 설비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새 모델을 학습시키는 동안에는 설비를 제품 판매에 쓸 수 없다.반대로 기존 모델의 추론 서비스에 활용하면 곧바로 매출을 낼 수 있다.메리츠증권은 오픈AI GPT-6 아스트라 학습에 블랙웰급 GPU 10만개를 10주간 투입했다고 가정할 경우,이 기간 포기하는 수익이 12억1000만달러라고 추산했다.모델 교체 주기를 늦추면 개발비를 아끼는 동시에 기존 GPU로 돈을 벌 시간도 늘어나는 셈이다.

앤트로픽의 행보도 이런 의심을 키운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앤트로픽이 AI의 파국적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코딩 도구와 기업 계약을 놓고 경쟁사와 정면 승부를 벌여왔고,아모데이의 에세이가 나온 시점에도 새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짚었다.로이터도 감속론과 성장 압력 사이의 모순에 주목했다.앤트로픽은 현재 IPO를 통해 최대 1000억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상장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매출 성장과 기업가치 상승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력이 커질 수 있어서다.

감속론이 나온 시점도 눈길을 끈다.선두권 격차가 어느 때보다 좁혀졌기 때문이다.스탠퍼드대‘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이용자가 두 AI의 답변을 비교해 더 나은 쪽을 고르는‘아레나(Arena)’평가에서 2023년 초 오픈AI는 구글을 200점 넘게 앞섰다.올해 3월에는 앤트로픽 1503점,xAI 1495점,구글 1494점,오픈AI 1481점으로 상위 4개사의 격차가 22점에 불과했다.

멈춰도 청구서는 돌아온다

3조달러‘자본 록인’의 덫

AI 산업이 속도를 늦추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돈이다.앞서기 위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미리 확보하다 보니 수년 뒤까지 지출할 돈이 계약으로 묶였다.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5개 하이퍼스케일러와 엔비디아·브로드컴의 AI 관련 장부 밖 약정은 3조1000억달러를 넘어섰다.보증과 리스,구매약정 등 아직 재무제표에 부채로 모두 잡히지 않은 금액이다.5개 하이퍼스케일러만 놓고 봐도 2조7000억달러가 넘는다.합산 영업현금흐름(연간 기준)의 약 3년 치다.

장부에 잡히지 않았을 뿐,원스 휴먼 토토 감염 체결국 나가야 하는 돈이다.예를 들어 아직 짓고 있는 데이터센터를 10~15년간 빌리기로 했다면 가동 전에는‘미개시 리스’로 남는다.데이터센터가 문을 열면 임대료를 내야 하고 리스부채도 장부에 잡힌다.GPU와 서버 구매약정은 회계상 부채로 잡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약속한 물량을 받으면 현금은 나간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퍼스케일러의 부외 약정을 1조8500억~2조4000억달러로 추산한다”며 “미개시 리스는 향후 부채로 전환되고 구매약정은 고정비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쉽게 말해 아직 청구서가 오지 않았을 뿐,얼마를 내야 할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AI 산업이 일종의‘순환 금융’형태라는 점이다.AI 산업은 여러 회사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앤트로픽이나 오픈AI 같은 모델 개발 업체가 클라우드 사용 계약을 맺으면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업체는 그 수요를 믿고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 GPU가 들어가고,건설비는 자체 현금이나 회사채·사모대출 등으로 조달한다.① 모델 개발 업체의 클라우드·연산 수요 → ② 클라우드 업체의 데이터센터 투자 → ③ GPU·전력 설비 발주 → ④ 외부 자금 조달이 서로 맞물리는 식이다.특정 주체의 지출이 다른 회사의 매출이 되고,그 매출에 대한 기대감이 다음 투자의 근거가 된다.이경자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한 개의 주체가 흔들릴 경우 다수의 주체가 모두 리스크에 노출되는 형태”라고 짚었다.

[최창원 기자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8호(2026.09.30~10.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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