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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BS1 <한글,100년의 편지>
지금 우리가 한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는 일본의 노예가 아님을 알려준다.1938년 3월 3일 미나미 총독이 이끄는 조선총독부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한국어 교육을 축소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다.지금 우리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은 그 같은 식민정책이 실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세계 정상급의 제국주의국가였다.1920년에 국제연맹이 창립될 당시,이 기구의 상임이사국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와 더불어 일본이었다.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는데도 연맹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같은 나라도 있었지만,상임이사국이 됐다는 것은 당시의 일본이 제국주의 세계질서 내에서 주요 강대국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무렵의 일본은 그 이전 역사에 등장했던 일반적 의미의 강대국이 아니었다.자국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나라의 대중과 자연자원을 수탈·착취하는 제국주의 강대국이었다.그런 제국주의 강대국이 탄압을 가하는데도 한글은 살아남았다.덕분에 지금 우리는 히라가나·가타카나가 아닌 가나다로 우리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한글은 '쉽다'
한글날인 10월 9일 저녁,한글날의 기원인 가갸날이 100년 전인 1926년에 제정된 사건을 화두로 한글 현대사를 풀어가는 EBS1 <한글,100년의 편지>가 방영됐다.이 프로그램은 한글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은 원동력을 한글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 등과 더불어 한글 자체의 특성으로도 보여준다.
이 방송은 배우기 쉬워 누구에게든지 착착 달라붙는 한글의 특성을 강조한다.이 점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자,이 방송 제1부는 한글과 한자를 처음 대하는 12개국 30명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결과도 보여준다.
남기춘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자문을 제공한 이 실험은 270개의 음절과 단어를 음성으로 들려줌과 동시에 각각의 소리에 해당하는 한글과 한자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예를 들면,'오'라는 소리를 들려줌과 동시에 한글 '오'와 '한자 오(誤)'의 모양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런 학습을 4일간 받은 대상자들이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새로운 단어'를 읽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조사됐다.그 결과,새로운 단어를 정확히 읽는 능력이 한글에서는 80%,한자에서는 55%로 나타났다.
이 방송은 '한자와 달리 한글은 규칙성이 높기 때문에 실험 대상자들의 한글 응용력이 더 높게 나왔다'는 남기춘 교수의 의견을 들려준다.배운 적이 없는 글자도 발음하기 쉬운 한글의 특성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그는 말한다.실험에 참가한 프랑스인 오드리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자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있었어요.한자는 첫 수업부터 포기할 뻔했거든요.근데 한글은 한 국가의 글자로 접근하기에 다른 아시아 언어의 문자보다 확실히 더 쉬웠어요."
한글은 쉬운 특성으로 인해 마치 접착제처럼 사람에게 붙는다.이 점도 한글에 대한 한민족의 애착도를 높이고 한글이 일제 탄압을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자를 한국인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세계 정상급의 제국주의국가가 집중 탄압을 가했다.하지만,이 시도는 실패했다.식민지 한국의 반일 분위기에도 기인하는 일이지만,한번 접촉한 사람의 몸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한글 자체의 접착력에도 기인하는 일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한글의 힘
한글이 쉬운 문자라는 점은 고종 임금 때인 1886년에 육영공원 교사 자격으로 입국했다가 나중에 한국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한글을 배운 지 불과 나흘 만에 읽기·쓰기가 가능하게 됐다는 그는 고종이 주관한 영어 시험에서 한글의 진가를 절감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에는 고종과 세자(순종)가 육영공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시험을 주관하는 장면이 나온다.고종은 영어를 몰랐다.그런데도 영어 문제지를 학생들 앞에서 읽었다.
이 책은 "고종과 세자의 질문지와 답안지에는 한글로 영어 발음을 적었고 그 밑에 한문으로 뜻까지 달았다"라며 "시험은 고종이 직접 물어보고 답변 여하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눠 직접 등급을 매겼다"고 알려준다.질문지와 답안지의 영어 글자 밑에 한글이 적혀 있었기에,고종이 마치 영어를 잘하는 듯이 문제를 읽고 점수를 매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성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위 책은 표음문자인 한글에 대한 헐버트의 평가를 이렇게 알려준다.
"헐버트는 한글이 음성언어('표음문자'로 정정해야 함,기자 주)이기에 임금이 영어를 몰라도 시험이 가능했으며,한글은 단어가 조합되는 대로 읽으면 되고 발음기호가 필요 없어 매우 우수한 문자임을 느꼈다고 술회했다.헐버트는 이때부터 한글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어 단어 밑에 적힌 한글을 보고 문제를 내고 채점을 하는 과정에서 임금님의 실수가 나왔다.고종의 손에 들린 답안지에 따르면,수험생의 답변에서 'do not know'라는 말이 나와야 했다.그런데 한 수험생은 그렇게 답하지 않고 "don't know"라고 답했다.이때 벌어진 일을 위 책은 이렇게 알려준다.
"그런데 시험문제에 답하는 도중,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어떤 학생이 문제에 답하기를 'I do not know' 대신에 'I don't know'라고 했다.그러나 고종은 답이 틀렸다고 했다.그 순간 헐버트는 당황했다.헐버트는 고종에게 'don't'는 'do not'의 줄임이니 맞는다고 설명하였다.고종은 헐버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종이 든 답안지에는 '두 낫 노우'라는 한글밖에 없었다.'돈 노'라는 한글도 함께 병기해줬다면,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에 매료된 헐버트는 이 문자의 창제자에게도 관심을 가졌다.헐버트가 저술한 <대한제국 멸망사>는 15세기 한국사를 서술하는 대목에서 "초기의 한 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어려움으로부터 해방되게 하기 위해 표음문자를 창제할 것을 결심했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창제자의 노력을 소개한다."왕은 학자들을 모아 오랫동안 주의 깊게 연구하여 한 문자를 제정했는데,이 문자는 그 구조상의 간편함으로 보나 발음상의 탁월함으로 보나 가히 이 세상에 가장 우수하다고 볼 수가 있다"고 그는 감탄했다.
서양제국주의가 아시아로 몰려오던 19세기에는 동양 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우월감이 대단했다.동양을 낮춰 보는 오리엔탈리즘적 사고가 그들을 지배했다.
헐버트가 한국에 입국하기 4년 전인 1882년에 그의 나라와 조선은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 제4조는 조선에서 미국인이 치외법권을 갖게 된다고 규정하면서,조선의 사법제도가 개혁되면 이 불평등조항을 철폐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규정은 당시의 서양제국주의가 치외법권을 강요한 명분 중 하나를 알려준다.'너희의 사법제도가 미개하므로,우리 국민에 대한 재판을 너희에게 맡길 수 없다'는 관념을 저변에 깐 것이었다.
치외법권 조항에서도 나타나듯이,당시의 미국 정부는 한국의 문화와 제도를 낮게 평가했다.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들어온 헐버트는 한글을 겪어본 뒤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탄복했다.그는 위에 언급된 "초기의 한 왕"을 다시 언급하면서 "한글의 창제는 천재의 노작"이었다고 극찬한다.
헐버트 박사가 '천재의 노작'이라고 평가한 문자를 일본제국주의는 말살하려 했다.하지만 한국 땅에서 말살된 것은 '천재의 노작'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다.지금도 일본열도 왼쪽의 한반도에서,자막사이트 cat또 그 열도 내부의 재일한국인들 사이에서 한글은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한글이 살아남은 것은 한글을 지키겠다는 한민족의 집념이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글 자체의 힘이 우수하기 때문에도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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