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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서비스 평전‘스탈린’국내 출간
학대로 점철된 유년부터 권력투쟁·대공포까지
독재자와 지식인 한 인물 안에 공존
‘20세기 괴물’의 내면 심층 분석한 역작
러시아 근현대사·혁명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로버트 서비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의 평전‘스탈린’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극비 문서와 미공개 편지·일기,스탈린의 조카 키라 알릴루예바 등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신화와 왜곡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스탈린의 참모습을 복원해 냈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스탈린을 알기 위해선 스탈린의 많은 측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키라 알릴루예바의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원칙”이라고 말한다.
스탈린은 권좌에 오른 뒤 자신의 공식 생일을 조작할 만큼 철저한 신비주의자였다.그가 철벽 같은 방어기제를 세운 이유는 유년기에 겪은 참혹한 학대와 비극에서 찾을 수 있다.구두 수선공이자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스탈린과 어머니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고,소년 소소(스탈린의 아명)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내면 깊은 곳에 쌓으며 성장했다.어릴 적 앓은 천연두로 얼굴에 생긴 곰보 자국과 마차 사고로 평생 불편했던 왼팔 등 신체적 결함은 소년 스탈린에게 결핍과 피해망상의 씨앗이 됐다.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려 했던 어머니의 바람 덕분에 스탈린은 명문 티플리스정교회 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하지만 신과 제국,차르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신학교의 엄격한 감시 체제와 독방 감금 징계는 그를 반골적인 혁명가로 탈바꿈시켰다.소년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카를 마르크스의 철학 서적을 탐독하며 볼셰비키 투사로 각성해 나갔다.
학창 시절 스탈린은 조지아어 신문에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릴 만큼 예술적 섬세함을 지닌 소년이었다.동시에 거리의 싸움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규칙 위반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거친 면모도 지녔다.유년기의 학대와 신학교의 억압적인 종교 교육이 모순된 두 내면을 기이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1930년대 말 소련을 피와 공포로 물들인‘대공포(Great Terror) 정치’는 서늘한 이성적 계산과 극단적인 피해망상이 빚어낸 체제 유지의 핵심 도구였다.스탈린은 당시 비밀경찰 수장 예조프가 가져온 약 4만 4000명의 숙청 대상자 명단과 사진첩 383권을 집무실에서 한 장씩 꼼꼼히 검토해 서명했으며,“개에게는 개죽음을!” 같은 참혹한 사형 판결 문구를 손수 휘갈겨 넣었다.스탈린의 인명 경시와 잔혹함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적에게 포로가 되는 것을 반역으로 규정한‘명령 270호’를 고수했던 스탈린은 독일군의 포로가 된 친아들 야코프마저 차갑게 외면하며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비정했다.
스탈린은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살아가야 할 차르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평생을 개인 숭배와 절대 권력의 정점에서 살았던 그였지만 정작 퇴근 후 머물던 블리즈나야 별장의 책상 서랍 속에는 세 장의 종이가 보관돼 있었다.자기를 향해 더는 암살자를 보내지 말라는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요시프 티토의 쪽지와 처형 직전 “코바(스탈린의 별명),왜 내 죽음이 필요하지?”라고 부르짖은 동지 니콜라이 부하린의 마지막 편지,그리고 레닌이 자신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절교 서한이었다.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제왕적 독재자가 실은 평생을 불신과 불안,용과 같이 7최강 방어구고독이라는 심리적 감옥에 갇혀 지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1세기북스,9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