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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을이다.한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그렇게 가라고 해도 미적거리더니 여름이 가긴 했나 보다.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지고 일교차도 커졌다.여름 내내 밤새 열어놓았던 창문을 이제는 닫아야 하는 이 계절이 너무 좋다.
여름에는 삼시 세끼 밥을 지으며 국을 잘 끓일 수 없었다.기온이 높아 금세 쉬어버리니 뚝배기에 한 끼씩 먹을 수 있는 찌개나 냉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끼니마다 다른 찌개를 올리는 게 사실 번거로운 일이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자주 올리는 된장찌개를 큰 냄비에 끓여 뚝배기에 덜어 줘도 그 맛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남편 덕분에 내 잔꾀는 통하지 않았다.
이제 한 냄비 가득 국을 끓여도 괜찮을 계절이 왔다.국을 끓여 놓으면 서너 끼는 찌개나 국 걱정이 없으니 주부인 내겐 아주 반가운 계절이다.
"소고기 뭇국 끓여 먹을까?"
남편도 마음이 통했는지 스리슬쩍 국 이야기를 꺼냈다.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함이 드는 것도 잠시,속으로 '앗싸!' 쾌재를 불렀다.회사 일이 너무 바쁜 남편과 아주 오래간만에 장을 보러 갔다.아마 몇 달만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제안한 소고기 뭇국의 재료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들러 국거리 소고기를 샀다.다음엔 평상시 늘 준비해두는 생선을 사려고 생선 가게로 향했다.고등어와 오징어를 사고 자리를 뜰 때였다.옆에서 머뭇거리던 남편이 아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아귀찜 먹고 싶다."
"아귀찜 좋지.해 줄까?어차피 콩나물 살 건데 좀 더 양이 많은 거로 사고 미나리만 추가하면 되겠다."
손질해 둔 아귀 한 마리와 필요한 재료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아귀찜은 집에서 요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나도 그랬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먼저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다음 날 아침에 데워 먹으면 되니까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다.우리 집은 아침,점심은 밥을 먹는다.저녁은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반주를 곁들인 안주 중심으로 먹는다.세 끼 중에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밤늦게 먹는 남편의 저녁이다.그날도 남편이 마칠 때쯤 전화를 걸었다.
"국은 끓여 놨는데 오늘 뭐 다른 거 필요해?"
"아침에 시장 봤던 아귀찜 먹고 싶은데."
"그럼 바로 준비할게."
의외로 아귀찜 요리가 손도 많이 가지 않는 데다가 맛도 끝내준다.양념장은 미리 만들어 두면 된다.재료 준비와 실제 조리하는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남편과 오래간만에 아귀찜을 먹으며 식당을 했을 때의 추억에 잠겼다.당시 식당 주인이 "평생 펜대만 잡아 온 네가 식당을 할 수 있겠나?"라며 걱정했다.하지만 생활이 어려웠던 때라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막상 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남편이 극구 반대했던 일이었는데 배운 것이 많았다.무엇보다 큰 건 어떤 요리를 하든 지레 겁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그것만 해도 내 삶의 한 페이지를 기꺼이 장식해도 될 만큼 보람 있었다.
"너무 맛있다.이러니 어떻게 배달시켜 먹겠노?"
"그러게.내가 해도 진짜 맛있긴 하네."
"다음엔 가오리찜 해 줄 수 있어?"
"콜!이런 건 일도 아니지.언제든 먹고 싶으면 말해."
야들야들한 아귀의 살은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내렸고 미더덕은 씹는 순간 오도독 터지며 바다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튿날 아침은 남은 콩나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찜요리나 볶음요리의 마지막은 볶음밥이 국룰 아니겠는가.콩나물을 잘게 자른 후 밥을 넣고 볶다가 김 가루를 톡톡 털어 넣고 참기름을 둘러 휘저었다.냄비의 가운데에 빈 원을 만들어 달걀을 하나 톡 깨뜨려 넣고 화룡점정으로 치즈 두 장을 밥 위에 척 올렸다.냄비째 식탁에 올려 휘리릭 섞어 먹으니 맛도 두 배 행복도 두 배로 겅중 뛰어올랐다.
재료비라고 해 봤자 아귀와 미더덕이 1만 3천 원,콩나물과 미나리가 5천 원 정도였다.조리법 또한 간단하니 이 가을의 길목에 만들어 먹기 참 좋은 음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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