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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23년 만에 자막 수정
‘그때 그사람들’은 일부 삭제돼
법원 “허구와 실제 혼동할 우려”
軍 의문사 다룬‘아버지의 전쟁’
제작 허가됐지만 반발에 엎어져


 지난달 개봉한 영화‘암살자(들)’의 한 장면.[하이브미디어코프]
지난달 개봉한 영화‘암살자(들)’의 한 장면.[하이브미디어코프]
정상적인 헌정체제라면 강물처럼 흐르는 표현·창작의 자유는 때론 암초를 만나 표류한다.창작물의 소재가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일 때다‘역사 왜곡‘명예 훼손’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쓸 위험은 상존하며,소재가 한국 현대사와 같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하다면 법의 심판대까지 오를 수 있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암살자(들)’은 표현·창작의 자유의 인정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문제작으로 비화했다.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그간 불거졌던 의혹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사건을 재구성했다.그러나‘중앙정보부 개입설‘정권 기획설’을 암시하는 장면은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반발을 샀으며,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역사적 사건을 각색해 극 영화로 만든 창작물에서 표현의 자유와 명예 훼손의 경계는 어디쯤 그어질까.창작물을 역사 왜곡이라고 규정지으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비추다 법정 다툼에 휘말린 과거 문제작들을 통해 예술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살펴봤다.

‘표현의 자유’가‘명예 훼손’과 충돌한 대표적인 문제작은 2003년 개봉해 한국 영화 사상 첫 천만 관객을 달성한‘실미도(감독 강우석)’다.영화가 북파공작을 목적으로 1968년 창설된‘684부대’훈련병들을 사형수나 살인범으로 그린 것이 문제가 됐다.유족들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감독과 제작사를 고소했지만,잡토토2004년 검찰은 제작에 참고한 국회 회의록,언론 보도 등이 일부 훈련병을 전과자였다고 밝히고 있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민사로 진행된 손해배상 소송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684부대원들은‘민간인’이었다고 밝히면서 영화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드러났지만,대법원은 제작진의 손을 들어줬다.제작 당시 이를 알기 어려웠는데도 역사적 진실을 앞세워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된다는 취지였다.다만 실미도 배급사인 CJ ENM은 유족들의 입장을 수용해 지난달부터 영화에 사실관계를 수정하고 유족들에 사과하는 안내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영화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혼동할 가능성이 제기된 문제작은 지난 2005년 개봉한 블랙코미디 영화‘그 때 그 사람들(감독 임상수)’이다.박정희 전 대통령 사건(10.26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대통령 뿐 아니라 당시 권세를 누리던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고위층,육군 장성들을 비정상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권력의 부도덕함과 위선,졸렬함을 강도 높게 풍자했다.개봉 전부터 보수진영의 반발을 산 영화는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제작사를 상대로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면서 법정 싸움으로 비화했다.

당시 재판부가 문제 삼은 점은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장면이었다.법원은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부도덕하게 묘사했다는 사실은 긍정했지만,객관적인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키는데 이르진 않았다며 상영 자체를 금지하진 않았다.다만 부마항쟁 시위,안전한 토토 추천 제로메이저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김수환 추기경의 박 전 대통령 추모를 담은 세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면 영화에 사실성을 부여해 관객이 허구와 실제를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결국 영화는 104분의 분량에서 3분 50초에 해당하는 장면이 삭제된 채 상영됐다.

진실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의 빈칸을 허구로 채우려다 반발에 부딪혀 영화 제작 자체가 중단된 사례도 있다.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고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룬‘아버지의 전쟁’이 대표적이다.2009년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모두 김 중위의 사인을 규명할 수 없다고 결론 냈지만,영화 제작사 측은 2017년 김 중위의 사망 경위를 군 내부 부조리와 연관 짓는 방향으로 촬영에 돌입했다.이에 김 중위의 유족들은 명예 훼손과 사망원인 왜곡을 이유로 제작사 측을 상대로 촬영·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놓고 벌어진 법적 분쟁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재판부는 제작사의 손을 들어줬다.당시 대법원은 “상업영화의 경우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다소 각색하는 것은 의도적인 악의의 표출에 이르지 않은 한 용인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제작을 허가한 셈이지만,와플게임이미 유족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영화는 촬영이 중단되며 결국 스크린에 걸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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