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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페라 20년,유럽 최정상 바리톤
백혈병 투병 이겨내고 돌아온 이상민
"내 노래의 주인은 하나님”
15년 만에 국립오페라단 초청
오는 30일과 내달 1일 바그너의‘니벨룽의 반지’
4부작,첫 작품인‘라인의 황금’으로 무대 올라
바리톤 이상민이 2021년 11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을 열연하는 모습.
바리톤 이상민이 2021년 11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을 열연하는 모습.
“돌이켜 보니 나의 자랑도,생명도,노래도 모두 주님의 것이었습니다.덤으로 주어진 두 번째 삶은 감사와 은혜뿐입니다.”

유럽 최정상의 독일 오페라 무대를 누비다 예고 없이 찾아온 백혈병으로 사선을 넘나든 바리톤 이상민(49)의 고백이다.투병하면서도 그는 생명의 주관자에게 삶을 맡기며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다.그리고 15년 만에 국립오페라단 초청으로 고국의 무대에 선다.정금처럼 단단해진 목소리로 다시 관객 앞에 선 그를 최근 경기도 과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양인 바리톤으로 20년,독일 무대를 지킨다는 것
이씨의 음악적 뿌리는 주일학교 시절 여의도순복음교회 성가대에서 시작됐다.그는 “어머니는 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찬양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셨고 3살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했다”고 회상했다.처음부터 성악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성악은 부유한 가정에서나 할 수 있다’는 편견 때문에 중·고교 시절 교사들의 권유도 여러 차례 거절했다. 

마음을 바꾼 것은 고교 2학년 때였다.교회와 학교 합창단에서 솔로를 맡으며 성악의 매력에 빠진 그는 결국 부모에게 “성악을 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다.이씨는 “아버지가‘예술·체육 분야는 최고가 돼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너는 최고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며 “최고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그는 성악을 전공하던 교회 선배들을 찾아가 레슨을 받으며 입시를 준비했다.이씨는 “적은 비용에도 기꺼이 가르쳐준 교회 형과 누나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1997년 연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악과에서 공부를 이어간 그는 동문인 2003년 성악가 강경해씨와 결혼한 그는 아내와 함께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오페라극장 정단원 제도에 매력을 느껴 독일행을 택했고,이후 아내가 일본 음악콩쿠르에서 3등을 하며 드레스덴 오페라극장에 스카우트됐다.이씨도 드레스덴 음악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뒤 같은 극장 오디션에 합격했다.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는 소프라노,저는 바리톤 솔리스트로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리톤 이상민이 2018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Alte Oper Frankfurt)에서 열린 콘서트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바리톤 이상민이 2018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Alte Oper Frankfurt)에서 열린 콘서트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동양인 바리톤으로 20년 넘게 독일 무대를 지킨다는 것은 매번 시험대에 서는 일과 같았다.솔리스트들은 일정 기간마다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특히 바리톤은 경쟁이 치열했다.이씨는 “소프라노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면 바리톤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고 할 정도”라며 “외국인,그것도 동양인 바리톤으로 계속 선택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드레스덴에서 6년가량 활동한 뒤 프리랜서를 거쳐 도르트문트에서 6년,이후 뉘른베르크에서 무대를 이어왔다.오랜 기간 같은 극장장과 여러 극장을 옮겨 다니며 함께 작업해온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무대에서는 체격도 강점이 됐다.이씨가 주로 맡아온 배역은 상대 배우와 대립하거나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 많았다.그는 “감사하게도 부모님께 184㎝의 건장한 체격을 물려받았다”며 “당시 동양인 남성 성악가 가운데 큰 체격을 가진 이가 많지 않아 노래뿐 아니라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년간 독인 무대에서 그가 스스로에게 되새겨온 원칙은‘기본대로’다.이씨는 “2007년 독일 오페라 콩쿠르 우승 당시 만난 극장장에게‘악보를 정확하게 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며 “쉼표의 위치와 박자,슬롯프리게임끊어야 할 지점까지 작곡가가 써놓은 것을 그대로 지키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이어 “소리를 과시하기보다 가르침대로 악보에 충실하려 했다.결국 음악도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며 “지금도‘내 기분대로가 아니라 기본대로’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배운 온전한 순종
바리톤 이상민이 최근 경기도 과천의 한 카페에서 백혈병 투병을 이겨내고 15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서는 소감을 전하고 있다.
바리톤 이상민이 최근 경기도 과천의 한 카페에서 백혈병 투병을 이겨내고 15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서는 소감을 전하고 있다.
쉼 없이 무대를 누비며 미국과 이탈리아 진출을 앞두고 있던 그는 4년 전‘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진단을 받았다.이씨는 “의사가 독일어로 병명을 말해줬는데 15년 넘게 독일에 살았어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며 “종이에 병명을 써달라고 해 인터넷으로 검색하고서야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회상했다.급성인 데다 치료가 한 주만 늦었어도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처음 1~2초 정도는‘왜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이 병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고,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어요.하지만 곧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어 허락하신 것이니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자 이후의 치료 설명도 크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치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항암제 알레르기 반응으로 혈압이 40 이하로 떨어져 의사로부터 “오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그는 “입안과 목구멍이 모두 헐어 침조차 삼키기 힘들었고,아톰 슬롯통증 때문에 강한 진통제 없이는 잠들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려움에서도 그가 흔들림 없이 하나님 앞에 삶을 내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신앙적 깨달음 덕분이었다.이씨는 “성악가로서‘하나님께 드리는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잣대로 다른 이의 찬양을 판단하던 어느 날 집회에서‘상민아,나는 저 음악도 좋아’라는 음성을 듣고 나의 교만이 부끄러워 무릎을 꿇었다”고 회상했다.또 교회 봉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여기던 시절에는 종교적 행위보다‘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중요함을 알게 됐다.아들을 얻는 과정에서는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임을 깊이 경험했다.그는 “모든 훈련 뒤 병을 만났기에 하나님께 온전히 내 삶을 맡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악가로서 온전한 소리를 되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예전처럼 쉽게 소리가 나지 않았고 갑자기 숨이 차기도 했다.하지만 이씨는 “1년 동안 쓰지 않아 약해진 근육이라면 다시 조금씩 단련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가 회복 과정에서 붙든 말은 “오늘이 제일 잘한다”였다.이씨는 “소리는 시간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그 시간,그 장소,그 몸으로 내는 소리이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소리가 같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이어 “연습은 어제 냈던 좋은 소리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몸 상태를 살피고 그 안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소리를 찾는 과정이었다”며 “1년 전,한 달 전의 잘했던 순간에 매달리기보다‘매일 최고가 될 수는 없지만 오늘의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힘든 재활을 견뎌냈다”고 설명했다. 

15년 만에 고국 무대…국립오페라단 초청‘라인의 황금’
바리톤 이상민이 2025년 2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맥베스(Macbeth)’에서 주인공 맥베스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바리톤 이상민이 2025년 2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맥베스(Macbeth)’에서 주인공 맥베스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그는 오는 30일과 다음 달 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니벨룽의 반지’4부작 가운데 첫 작품인‘라인의 황금’무대에 오른다‘파우스트’이후 15년 만의 국내 무대다.

이씨는 “방대한 이야기와 많은 등장인물,독일어라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국내에서는 자주 공연되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큰 자부심을 갖는 작품”이라며 “황금을 둘러싼 인간과 신,거인들의 사랑과 탐욕,욕망과 해학이 잘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지휘자와 연출자,출연진 대부분이 유럽 무대 경험을 갖고 있어 관객들이 작품의 정서와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신들의 우두머리‘보탄’이다.이씨는 “지혜의 신이지만 오히려 판단이 흔들리고 다른 신들에게 휘둘리기도 하는 인간적인 인물”이라며 “앞에서는 큰소리치지만 뒤에서는 걱정하는,월드컵 tv 토토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관객들이‘라인의 황금’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을 묻자 이씨는 “조금만 내용을 예습하고 오면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바리톤 이상민이 2024년 10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비제의 오페라‘카르멘(Carmen)’에서 에스카미요 역으로 무대에 선 모습
바리톤 이상민이 2024년 10월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비제의 오페라‘카르멘(Carmen)’에서 에스카미요 역으로 무대에 선 모습
“자막이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세 시간 가까운 공연에서 자막과 무대를 계속 번갈아 보는 것도 쉽지 않고,자막만으로 모든 대사와 뉘앙스를 담기도 어렵지요.결국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합니다.관객이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인물이 화가 났는지,사랑하는지,절망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요.20년간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배우고 즐겼던 모든것을 남김없이 다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국내 성악과 오페라의 저변이 좁아지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그는 “예전에는 성악을 택했을 젊은 인재들이 이제 K팝이나 뮤지컬로 많이 간다”며 “성악계도 젊은 세대에게‘오페라도 재미있다’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점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독일 역시 성악을 직업으로 택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악기와 합창,오페라를 자연스럽게 접해 클래식에 대한 거리감은 적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차이는 오페라 제작 환경에서도 드러난다.독일은 오페라와 뮤지컬,발레 공연이 연중 이어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솔리스트 등 상주 인력을 둔다.반면 한국은 작품마다 인력을 모으는 프로젝트형 제작이 많다.이씨는 “독일은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문화와 클래식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 시스템을 유지한다”며 “한국이 국악을 계승하기 위해 국립국악원과 연주자들을 지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끝을 알고 나니 삶이 심플”…제2의 삶은 “감사” 
바리톤 이상민이 2026년 3월 8일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나부코(Nabucco)’에서 주인공 나부코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바리톤 이상민이 2026년 3월 8일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나부코(Nabucco)’에서 주인공 나부코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이씨는 “끝을 알고 나니 삶이 참 심플해졌다”며 “내 자랑도,생명도,온라인 카지노 합법 나라노래도 모두 주님의 것이었기에 제2의 삶에는 감사와 은혜뿐”이라고 말했다.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고 했다. 

“교회에서 찬양만 하면 감사해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납니다.예전에는 특송이나 봉헌송도 자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쉽지 않아요.제가 회복된 것은 제 힘으로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100% 알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지금 살아 있고 다시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일까.앞으로의 삶도 거창하게 계획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그는 “제 계획을 하나님께 관철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을 잘 따라가고 싶다”며 “간증과 신앙을 말한 뒤 삶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만큼,오늘 맡겨진 일을 잘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투병을 지나며 신앙의 의미도 다시 배웠다.이씨는 “고통의 크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과정을 지나간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이 가신 길을 푯대 삼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의 길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감히 이정도의 아픔을 한번 격었다고 정말 고통속에 있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으나 주께서는 견딜만한 고통도 주시지만 그 고통을 통하여 나를 정금같게 하시기에 그 고통이 있으시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정금과 같이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실 주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올림픽 포커,실제로이 5 학년 엘릭서를 개선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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